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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동그라미 예술] 안산 시민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 모집(무료)

  • 작성일2014-09-19
  • 작성자관리자
  • 조회수6763



1. '사람은 울면서 웃는다' - ‘거울신경세포’로 본 윤동주의 문학세계 (오영진-한양대)

이 강의는 신경생물학과 문학을 결합한 강의다. 윤동주문학의 핵심은 연민이다. 그런데 그의 연민은 일시적이고 소박한 감정이입을 넘어서 도덕으로까지 발전한다. 이 같은 원리를 살펴보기 위해 거울신경세포로부터 출발한다.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는 1980년대 중반,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지오코모 리촐라티 교수팀에 의해 처음으로 개념화된 것으로, 모방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는 단초를 제시하였다. 혹자는 거울신경세포가 심리학에 대해 가지는 중요성을 DNA의 발견에다 비견하기도 했다. 거울신경세포는 우리가 이웃에 공감하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능력이 바로 도덕적 능력으로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연민이 도덕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이중의 공감이 필요하다. 첫째, 상대의 현재 상태에 대해 공감하는 일이다. 상대의 고통을 그대로 나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둘째, 그의 미래 상태에 대해 공감하는 일이다. 즉 그가 나에게 전이되어 고통을 주고 있으므로, 그가 앞으로 치유된다면 나도 덩달아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그의 미래 이미지를 그리고 이에 공감하게 되며, 그 다음 그의 고통이 나아지길 바라는 방식으로 동정할 수 있게 된다.
윤동주의 작품에서 우리는 상대의 아픔을 내 안으로 끌어안는 동시에 상대의 미래를 향해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단지 고통의 전이만으로 끝났을 관계가 타자와 나 사이 거리감을 통해 이중의 공감으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병원」의 화자는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여자의 건강이' 회복되길 바란다. 그의 시는 대상․타자에 대한 우리의 연민이 왜 현재의 공감에 머물지 않고 미래를 향할 수밖에 없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어 표현에서 ‘운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슬픔을 느껴 눈물 흘린다는 것이고, 둘째 악기의 현과 현이 서로 진동하듯 그 떨림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단지 현재의 감정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일은 그 떨림을 신체적으로 적극공유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유지하는 일에서만 가능하다. 이로써 이웃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도덕적 능력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2. 또 다른 행복의 탐색 - ‘동감’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 (최병구-성균관대)

이 강좌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살펴보고, 진짜 행복을 위한 꿈꾸기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행복을 위한 제1조건인 ‘물질’이 정말 ‘나’의 행복을 보증하는가? 수많은 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 물질적 부는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물질적 조건이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결과는 늘 참혹하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왜, 발생하는가? 아니, 원래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근대 초기(1910~20년대)문학 작품과 최근의 문학 작품을 활용한다. 근대 초기의 문학 작품은 지금과는 다르게 행복에 대한 복잡한 쟁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근대 초기 문학 작품을 통해 행복을 위한 ‘동감’과 ‘부끄러움’의 감정에 대해 함께 느껴보고, 이를 다시 최근의 문학 작품과 비교하며 행복 범주의 재구성을 시도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적 영역이라 여겨지는 ‘행복’이 국가사회의 공적 영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우리의 꿈에 대해 재성찰할 수 있었으면 한다.

 

3. 고전(苦戰)의 시대, 고전(古典)을 읽다 - 고전에서 배우는 공감과 연대의 철학 (김홍백-단국대)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미디어로 접한 여러 사건사고의 피해자를 안타까워하고 동정하고 연민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가 피해의 당사자가 아닐 때에 국한된다. 내 문제일 수도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이 압도적이게 된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공감(sympathy)’의 능력이다.(아담 스미스) 공감은 나와 대상을 분리시키는 동정이나 연민과 달리, 나와 대상을 일치시켜 타인의 감정과 처지로 나의 감정과 처지를 이입시키는 ‘역지감지(易地感之)’의 능력이다. 여기서 비로소 ‘연대’로 나아갈 수 있는 윤리적, 실천적 거점이 마련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인문 고전에는 이러한 공감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본원적인 ‘관계’의 철학과 기술이 담겨 있다. 가령,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나와 타인 간에 있어 서로 다름(차이)을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공감과 소통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공자는 '노여움을 옮기지 않아야(不遷怒)' 한다 하였다. 이는 강자(시스템, 시어머니, 직장상사)에게 당한 설움이나 고통을 약자(가족, 며느리, 직장동료나 후배)에게 옮기지 않음이다.(후쿠자와 유키치의 ‘억압의 이양’) 또 공자는 사랑, 곧 인(仁)이 충(忠)과 서(恕)일 따름이라 하였다. 충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충실하고 진실한 마음이라면, 서는 자기 바깥의 타인에 대한 윤리적인 배려로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않는 것(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일상 현실은 이러한 정언명령과 정확히 반대라는 점에서, 이러한 고전은 우리의 현재적 삶을 뼈아프게 성찰케 하고 관계의 일상적 윤리성을 근본적으로 숙고하게 한다. 따라서 본 강좌에서는 《논어》를 필두로 하여 동아시아 인문 고전 텍스트에 담겨 있는 다양한 관계의 철학을 화두로 삼아, 21세기 한국의 현실에서 공감과 연대가 얼마나 어려우며 나아가 그럼에도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그 원리적 토대와 실천의 매뉴얼을 근본적으로 음미해보고자 한다.

 

4. 타자의 민낯, 그 고통을 직시할 때 - 한국 문학작품 속에 나타나는 타자를 위한 윤리학 (조영란-한국예술종합학교)

근대 이후 사상사에서 ‘인간 주체’에 대한 이해는 지속적인 관심사였다. 특히 1인칭 중심의 주체 사상 내에서 ‘타자’의 존재는 언제나 대상화되거나 간과되어왔다. 하지만 과연 ‘나’와 ‘타자’는 별개의 존재인가? ‘나’의 존재감은 ‘타자’를 배척하고 이겨내야만 성립가능하며 더 빛을 발할 수 있는가? 이 강의는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기존 이성주의 윤리학이 지닌 모순을 되짚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레비나스와 알랭 바디우의 철학이론을 통해 ‘타자’를 위한 윤리학의 성립과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레비나스로부터는 인간의 자기 정체성이 1인칭의 주체적 관심을 떠나 주체 바깥 다른 차원으로부터도 해석될 수 있음을 살펴볼 것이다. ‘전체성’으로 묶일 수 있는 사유 중심적인 질서가 지닌 폭력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사유 너머로의 ‘무한성’에 대해 상상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타자’가 지닌 가치와 더불어 배타적으로 여겨왔던 ‘타자’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해 볼 것이다. 바디우를 통해서는 (특히 소외된) ‘타자’들이 현실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들은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며 그 부당함에 자신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다수의 윤리학에 균열을 가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참진리가 무엇인가를 깨닫는 ‘앎’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또한 사랑이라는 사건으로 표출되어 공동체가 서로에 대한 경외심과 책임감을 발견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관계와 협력이 중요시되고 새로운 공동체의 정체성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요즘, 이렇듯 ‘타자’에 대한 이해는 돌이켜 ‘나’의 존재를 되짚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강의의 이해를 돕기 위해 김승옥, 조세희, 황석영의 소설 작품들을 활용하고자 한다. 작품들을 통해 각각 (부끄러움>의 미학, (고통>의 미학, (사랑>의 미학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타자’의 윤리학이 지닌 가능성과 의의를 나누고자 한다.

 

5. '우리는 어떤 생명입니까?' - 시가 노래했던 사람들 사이의 ‘섬’ 찾기 (권창규 -연세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가 있습니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곳에 있다는 섬은 무엇일까요? 시인이 가보고 싶다고 했으니 외롭고 힘든 곳은 아닐 테지요.
여러분들 사이, 강의하는 저와 여러분 사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무엇이 각자 다른 사람들을 우리로 만듭니까? 우리라는 말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집단주의로 빠지기도 쉽고 또 인간만을 내세우는 인간제일주의로 빠지기도 쉽습니다. 위험한 집단주의나 허약한 인간제일주의에 그치지 않으려면 우리의 존재성은 생명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일상의 안전부터 주변의 사람들, 먹거리와 기후까지 불안합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요?
이 강의는 위기의 원인을 성장과 발전에 대한 환상에서 찾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성장과 발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를 생활의 가까운 감각에서부터 사회적인 통념과 국가적인 비전에 이르기까지 점검해보려 합니다. 강의에서는 조르지오 아감벤의 ‘벌거벗은 생명’을 경유해 ‘몫 없는 자들’,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들’로서 인간 존재를 철학적으로 살핍니다. 그리고 󰡔녹색평론󰡕의 김종철이 던지는 성장 담론의 함정에 귀기울여봅니다. 각자의 사람들은 어떻게 괜찮은 ‘우리’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을 꿈꾸어봅니다.

 

6. 대중문화를 통해 표현되는 갑을갈등 분투기 - 불평등사회 극복을 위한 시론 (강부원-한국방송통신대)

갑을갈등은 경쟁이 내면화된 한국 사회의 병적 모순을 담고 있다. 어느 영역에서나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갑과 을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는 사회 구조는 갈등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는 축도이다. 차별은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증상이며, 불평등의 자연화로 인해 촉발되는 구조적 갈등은 온갖 적폐들로 남아 있다. 직장과 학교를 포함해 어느 집단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갑을간의 적대 전선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역사적 상흔이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갈등과 분노는 무한 반복된다. 갑에게 받은 을의 상처와 불이익은 병을 새롭게 착취하는 것으로 절대 해소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갑을 갈등의 본질적인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근원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갑을갈등을 조장하는 어떤 불합리하고 불안한 공포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을갈등이라는 집단 내부의 긴장에 종속된 채 자신의 작은 권리가 침해되고 이익이 훼손되는 것에 발끈하는 행동만이 정당한 자기 보호의 조치인 것처럼 이해되는 사회 속에 어느덧 우리는 꽁꽁 갇혀 버렸다. 구성원 간의 실천적 연대와 민주 시민으로서 공유해야할 덕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뒷통수 공화국’, 한국 사회의 단면을 TV드라마 (직장의 신>, 영화 (부당거래>, (더 테러 라이브> 등을 통해 예리하게 해부해보자.

 

★ 6회 강의 중 5강좌 이상 수강하신 30분에게 6강좌 종료 후 강의자료집을 드립니다.

 

문의: 안산문화재단 문화사업부 031-481-0522

참가신청 :  상단 이미지 '참가신청'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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