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을 깨우다
1996년 1월 6일 새벽 4시, 매서운 한파, 그리고 차갑게 식어버린 숨소리. 故 김광석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고 19년이라는 세월은 무심히 흘러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의 삶을 회자하고, 그는 못 다한 노래를 멈추지 않은 채 더욱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온기를 간인시킨다. 자신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번에 만나게 될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주인공 박창근. 그는 김광석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중심에 있다. 아니 다시 깨워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일까, 둘은 꽤나 닮아 있다.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에서 자신만의 음악적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는 실력파라는 것, 그리고 음색, 사상, 노래에 대한 열정과 고뇌 등.
‘어쿠스틱 뮤지컬’이라 명명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다소 생소한 장르지만 김광석을 모티브로 하며, 극 중 이풍세(박창근 분)라는 인물을 통해 김광석을 다시 한 번 마주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관객들을 포용한다.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단독 주연을 맡고 있는 박창근을 만나기 위해 그의 공연이 오르고 있는 서울 동숭동의 SH아트홀을 찾았다. 약속시간보다 앞서 도착한 덕분으로 잠시 공연장을 미리 탐닉할 수 있는 행운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그가 온다. 잠시 김광석 생전의 모습이 교차되는 듯하다, 이내 다시 전혀 다른사람으로 환기된다.
인터뷰는 그가 노래하고 연기하는 무대에서 진행됐다. 그래서일까, 그는 무대에서 꽤나 근사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대를 둘러봤는데 특별한 장치나 꾸밈이 많지가 않습니다.”라는 질문에 “음, 김광석 선배님을 모티브로 준비된 공연이기에 고스란히 선배님을 추억할 수 있도록 애쓴 흔적들입니다.”라고 답한다. 실제로 그의 공연을 관람했던 이들은 이공연에 대해 “놀랍도록 김광석의 음색을 재현해낸 그의 노래와 또 함께하는 배우들의 열정적 연주, 그리고 연기가 더해져 또 다른 감동을 만들어 준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김광석이 그랬듯 그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마저 김광석을 닮아버린 이유일 수도 있겠다.
사실 그는 커다란 무대도 좋지만 소극장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놓을 수 없다. 생전에 가객(歌客)이라 불리던 김광석도 그랬다. 작은 무대지만 관객들과 이야기 하듯 그렇게 노래하고 자신의 열정을 표출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왜 노래를 하는지 말이다. 이에 그는“내 안에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아야 하는데,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저만의 방법이 바로 노래라고 생각했어요. 창작의 과정에서 얻게 되는 고통을 아는 이들이라면 동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명쾌한 대답을 들려준다.
재주 많은 사람
박창근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재주가 많다. Begin Again이라는 슬로건 아래 공연된 이 뮤지컬의 단독 주연은 물론 음악감독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인지소극장 문화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이에 대해 그가 먼저 소극장 문화에 대해 입을열었다. “경제적 논리로 쇠퇴해 가는 소극장 문화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동숭동의 아티스트들이 홍대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둥지를 틀고 있으나그 본질이 사뭇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어 아쉬움이 많습니다.”라며 “또 흔히 언더라고 칭해지는 우리들 스스로가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작 저는 똑똑하지 못하다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라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다.
사실 그는 찢어질 듯한 창작의 고통으로 태어난 호소력 짙은 음악을 통해 관객들과 작은 무대에서 소통하길 즐겨한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하는 공공의과제가 아닌가라는 반문을 던져보게 된다.
이어 그에게 “왜 김광석이었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선배님이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듯 노래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그런공연이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달게 됐지요. 또 자기만의 음악과 공연으로 소극장 공연 문화를 싹틔운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닮고 싶은 것이고, 그런 측면에선 분명저의 롤 모델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의 음악적 취향은 싱어송 라이터이자 사회운동가인 닐영(Neil Young)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여기에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며, 그동안 발매됐던 그의 솔로 앨범들에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들어있다.
대중에게 그가 전하고픈 메시지
우리에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뮤지컬 배우로 꾸준히 자신을 알려왔지만, 사실 그는 배우에 앞서 음악성을 인정받은 싱어송 라이터다. 대학시절부터 노래패로 활동했던 박창근 씨는 인간중심철학에서, 환경과 인간의 존재가 결코 둘이 아니며 육식에 기초한 생명에 대한 경시, 즉 이원론적 세계관이 사회 모순으로 이어진다는 범우주적 세계관으로의 철학적 전환을 노래하며 기존의 환경문제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왔다.
그리고 지난 2005년 발매한 2집 앨범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에 담긴 작품들을 통해 한국대중음악상 '평론가들이 주목한 올해의 음반'에 선정될 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터. 록 밴드 '가객'과 프로젝트 밴드 '이유'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1999년 솔로 1집 앨범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관객들과 소통을 자신의 음악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와 함께 하는 ‘김광석’이라는 꼬리표에 대해 부담이 있지는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에 "관객들이 나의 노래를 듣고 김광석을 추억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나를 인정해 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 나의 음악은 음악대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노래는 김광석 스타일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내 음악을 할 거다. 그래서 마음 편하다."라고 답한다.
and epilogue
그는 노래하며 관객들과 호흡할 때를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감히 말한다. 그런 그가 이제 안산시민들을 찾아온다. 이에 그는 “벌써부터 설레고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며 최고의 공연으로 보답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요즘 방송매체와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만들어낸 공연문화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소 획일적인 모습에 다름을 갈망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현실.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정형화된 문화를 감히 거부하고, 또 스스로 누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어 보다 많은 박창근, 그리고 그를 뛰어넘은 또 다른 김광석이 나타나주길 고대해 본다.
어쿠스틱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2012년 겨울 故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에서 초연한 뒤,지난해 대학로에서 공연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김광석 노래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거의 편곡을 하지 않은 음악과 배우가 직접 연주까지 함께하며 선보이는 20여곡의 라이브를 통해 많은 마니아 관객의 지지를 받은 작품이다.